“남편도 집에 들어올 권리가 있어요.”

도와달라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에게 경찰관이 말했습니다. 사흘이 지난 지난 6월21일, 여성은 남편에게 살해당합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부평 가정폭력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피해자는 오랫동안 폭력 남편에게 시달렸습니다. 법원이 접근금지 명령도 내릴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접근금지가 풀리자마자 가해자는 또 피해자를 찾아갔고요.

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내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관이 다시 접근금지를 발동할 수도 있었죠. 그러나 이 경찰관은 긴급 임시조치 필요도 조사표에 10점 만점에 2점만 매기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살인을 막지 못했습니다. 

여성폭력은 늘 ‘사소한 폭력’ 대접을 받아 왔습니다. 가해자들의 행위를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심각한 범죄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싸움’, ‘남의 집안 문제’라는 고정관념이 아직도 단단한 탓입니다.  

그 ‘사소한 폭력’이 반복되고 증폭되면서 여성들은 계속 죽어가는데, 우리 사회는 빠르고 적절한 대응에 계속 실패하는 중입니다. 올해 초부터 발생한 살인사건 388건 중 70건이 가정폭력·교제폭력·스토킹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났습니다. 책임은 ‘여성폭력’의 구조적 특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법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찰과 법원에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경찰청이 지난 8월 25일 ‘관계성 범죄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해 재범 위험성을 확인한답니다. 가해자 격리 강화,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도 강조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변화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와 기술을 도입해도 현장 경찰관의 인식과 대응이 바뀌지 않는다면 소용 없습니다. “남편도 집에 들어올 권리가 있다”는 식의 대응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AI와 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현장 경찰관의 성인지 역량 강화가 우선입니다. 젠더 기반 폭력의 구조적 특성을 이해하고, 피해자 중심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전문성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무고한 여성들이 삽니다. 이번 여신레터에선 경찰 대책 발표를 둘러싼 다양한 목소리와 전문가의 분석을 전해 드립니다. (이세아 기자)

76%, 보호조치가 있어도 막지 못한 비극

최근 잇따른 스토킹 참극에 지난 7월31일 경찰이 엄정 대응 기조를 밝혔는데요. 이후 일평균 전자발찌 부착 조치 건수는 기존보다 463%, 유치장 유치는 155% 증가했습니다. 경찰의 의지에 따라 적극적 대응이 가능함을 시사하는 한편, 그간의 대응이 소극적이었음을 보여줍니다.

기존 피해자 보호 시스템에도 근본적인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과거 신고나 수사 이력이 있었던 30건 중 미리 접근금지, 유치장 유치, 전자장치 부착 등 보호조치가 이뤄진 경우가 76.7%(23건)나 됐습니다. 스마트워치 지급, CCTV 설치, 민간경호 등 실질적 안전조치를 받은 경우도 17건(56.7%)이었지만, 잔혹한 범죄를 막지 못했습니다.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의 판단과 대응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 대한민국 유일의 여성 정론지 여성신문

🔥 성평등 실현을 위한 한 걸음 💪 여성신문 구독·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