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자택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2003. ⓒ사진: 낸다 랜프랭코, ⓒ The Easton Foundation/Licensed by SACK, Korea

루이즈 부르주아는 수많은 ‘최초’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40대에 본격 활동을 시작해 60대에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71세 때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여성 작가 최초로 개인 회고전을 열었고, 82세에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미국 대표 작가로 참가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지 15년이 흐른 2025년에도 새롭게 조명되고 해석되는 현대미술 거장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친언니처럼 지내던 젊은 입주 가정교사와 10여 년간 불륜을 저질렀고, 어머니는 모르는 체했습니다. 일찍 결혼해 고국 프랑스를 떠나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여성 예술가’에겐 또 다른 감옥이었습니다. 남성 예술가들이 주도하는 추상표현주의 운동 속에서 여성은 ‘예술가의 아내’나 ‘뮤즈’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부르주아는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우면서도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삶에서 나는 나를 희생자라고 본다. 그게 내가 예술을 하게 된 이유다. 내 예술에서만큼은 나는 킬러니까.” (2008년 프랑스 퐁피두센터 회고전 때 작가의 말)

(순서대로) ‘물방울 화가’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김창열(1929~2021) 화백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 ⓒ김창열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캔버스에 송글송글 맺힌 투명한 물방울. 그 시작은 총탄 자국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았고, 새로운 예술과 구원을 갈망했던 청년의 눈물이자 정화수였습니다.

1929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난 김창열은 열여섯에 홀로 월남해 서울에 있는 화가 이쾌대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미술을 배웠습니다. 1949년 서울대 미대에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발발합니다.

“6·25전쟁 중에 중학교 동창 120명 중 60명이 죽었고, 그 상흔을 총알 맞은 살갗의 구멍이라고 생각하며 물방울을 그렸다. 근원은 거기였다.”

1957년 김창열은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서구에서 유행하던 추상회화 운동 ‘앵포르멜’을 국내에서 이끌었습니다. 그에게 앵포르멜은 단순히 서구 미술의 모방이 아니라 총알 자국과 탱크가 짓밟은 흔적을 화면에 새기고 죽음을 위로하는 제의(祭儀)였습니다. 1966년 ‘제사’ 연작의 거친 붓질과 두터운 물감은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죽은 이들에 대한 애도의 표현이었습니다.

1965년 뉴욕으로 건너갔지만 주목받지 못하고 힘든 시간을 겪고, 1969년 파리로 이주합니다. 기존의 거친 질감 대신 매끈한 표면에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체의 장기 같은 덩어리에서 흘러내리는 점액질의 모습을 표현한 ‘창자 미술’들을 선보였습니다.

김창열, 물방울, 1971,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50x5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물방울, 1986, 73×50cm,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과 유화 물감,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1971년, 캔버스를 다시 쓰려고 뿌려둔 물이 방울방울 맺힌 모습을 우연히 본 김창열은 그 완성된 형태의 아름다움에 감탄합니다. 프랑스 외곽의 마구간 작업실에서 물방울 작업에 몰두했고, 1973년 파리에서 연 개인전을 계기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와 프랑스 국민 배우 카트린 드뇌브가 김창열의 전시를 보러 올 정도로 인기였죠.

“작고 전 ‘아직도 못 그린 물방울이 많다’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김창열에게 물방울은 깨달음의 과정이자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씻어내는 애도의 여정이었다.”(설원지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김창열’전
• 작고 이후 첫 대규모 전시
• 미공개 작품 31점 포함 120여 점
• 2025년 12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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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여신레터’는 이세아 기자가 제작했습니다. 다음 ‘여신레터’는 연휴 후 10월 17일에 찾아갑니다.
• 앞으로도 최신 젠더 이슈와 관련된 여성신문만의 다채로운 콘텐츠를 전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피드백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