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레터 47. ‘위안부 생존자 6명’이 말하지 않는 것

역사에서 지워지고 가려진 여성들을 떠올리며

2025.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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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 2025년 8월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수입니다. 수많은 기사 제목에 뜬 ‘6명’을 보며 ‘위안부’ 문제는 늘 숫자와 함께 다가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이 부족한지....

그런데 애초에 ‘위안부’ 피해자는 ‘셀 수 있는’ 존재였을까요. 20만 명이 넘으리라는 추정조차 일본군 부대의 숫자에 근거해 계산된 수치라고 합니다.

반면 일본군으로 동원된 조선인 규모는 꽤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육군징병 166,257명, 해군 22,299명, 학도지원병 3,893명.... ‘위안부’는 애초에 ‘셀 필요조차 없는’ 존재였다는 증거 아닐까요. 삶과 죽음을 기록할 가치가 없다고 치부된 여성들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셀 수 없는 자들’이 어떻게 ‘셀 수 있는’ 존재가 됐는지를 기억합니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세상에 ‘위안부’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이전인 1975년에도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증언한 피해생존자 배봉기 할머니가 있었고요. 그렇게 많은 여성들의 용기가 목소리가, 제도가, 숫자가 되었습니다.

광복 80주년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은 8월, 다시 그들을 생각합니다. 그 뒤에 평생 입을 열지 못한 여성들, 피해생존자 등록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도 생각합니다. 역사에서 지워지고 가려진 여성들을 떠올리게 되는 8월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숫자와 기록 너머 여성들의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폭우에도 일본대사관 앞에 모인 97세 생존자와 시민 600여 명, 100명이 바늘로 한 땀 한 땀 되살린 ‘허스토리’, 광장을 가득 메웠던 여성들이 정치 영역에선 보이지 않는 현실도 다룹니다.

“이재명 대통령님, ‘위안부’ 피해자 보호법 개정해주세요”

서울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13일,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시민 600여 명이 모였습니다. 1713차 수요시위, 그리고 광복 80년과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하루 앞둔 세계연대집회. 남인순·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 조국혁신당 강경숙·이해민·정춘생 의원 등 정치인도 참석했습니다.

97세 ‘위안부’ 피해생존자, 이용수 할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여러분이 이렇게 나와주셔서 눈물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은 피해자 보호법을 개정해주세요. 일본은 빨리 (법적 배상을) 집행해주세요.”

최근 수년간 ‘위안부’ 관련 시위나 소녀상 근처에서는 일장기를 휘두르며 피해자를 모욕하는 극우역사부정세력이 활개를 치고 있죠. ‘위안부’ 관련 단체들은 일본군성노예제 역사를 부정, 왜곡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는 이들을 강력히 처벌해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튿날인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이 서울 중구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열렸습니다. 지난 1991년 8월 14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에 마련한 기자회견장에서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죠. 이를 기념해 정부가 정한 기념일입니다.

신영숙 여성가족부 장관 직무대행은 “여섯 분만 남은 할머님 한 분 한 분이 존엄과 건강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은 더욱 세심하게 보완하겠다. 청소년과 미래세대에게 이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고 교육 기반을 튼튼히 다져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현장에선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 장면과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기록 영상이 재생됐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도 대독됐습니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고 기억이 그 증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공연도 열렸습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온전히 회복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은 이날 SNS를 통해 “33년 전 오늘은 고 김학순 할머님께서 오랜 침묵을 깨고 세상에 나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증언해 주신 날”이라며 “전시 성폭력 참상을 알린 고발을 넘어,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준엄한 호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광복 80주년을 맞이했지만,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아직 자유와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계신다”며 “역사의 진실이 바로 서지 않는 한 광복은 완전하지 않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일본군‘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을 약속한 바 있죠. ‘여성인권과 평화재단’(가칭)을 설치해 피해자의 명예 회복과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연구 사업도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사진 ⓒ손상민 사진기자

광복 80년, 한 땀 한 땀 되살린 ‘허스토리’

광복 80주년을 맞아 여성들의 목소리를 수놓은 특별한 프로젝트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시민 100명이 각각 하나의 조각을 만들어 2m x 2m 크기로 이어 붙인 ‘조각보 잇기 프로젝트’.

한가운데에 한국 여성사의 중요한 순간을 상징하는 단어 100개를 수놓았습니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에서 여성들이 선언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인권선언문 ‘여권통문’부터, 여성 주도로 작성한 최초의 독립선언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1927년 좌우를 초월해 설립된 ‘여성근우회’의 강령 등이요. 여권통문을 선언한 이소사와 김소사, 대한독립여자선언서에 서명한 여성 8명의 이름도 한 땀 한 땀 수놓아 2025년으로 불러왔습니다.

💬 “‘히스토리(history)’에서 누락된 ‘허스토리(herstory)’를 한 땀 한 땀 되살려내자는 취지였어요. 여성 독립운동가들, 조국의 해방을 외치고 나선 수많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죠.” 프로젝트를 8개월간 이끌어온 기계형 젠더뮤지엄코리아 관장의 말입니다.

참여자 100여 명 중 30% 이상이 남성. 바늘을 잡아본 적도 없는 사람들부터 교육자들, 예술가들, 외교관, 사회 활동가들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오는 22일~30일 이탈리아 북부 메라노에서 열리는 국제여성박물관대회(IAWM)에서 전시돼 전 세계 여성박물관 90여 곳을 통해 널리 알려질 예정입니다.

사진 ⓒ손상민 사진기자, 기계형 관장 제공

이 대통령 취임 후 첫 시·도지사 간담회 ‘여성 0명’

22명 전원 남성.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처음 열린 시·도지사 간담회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퇴진 광장을 지킨 청년 여성들. 정치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습니다.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여성은 0명. 참석한 대통령과 국무총리, 지방시대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 대통령실 비서실장 등 정부 주요 각료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 “이재명 대통령 취임 두 달이 된 지금까지도 광장의 주요 의제가 사라진 대의 정치의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여성이 없는 내각과 비동의강간죄가 논의되지 않는 국회를 비판하는 동시, 내년 6·3 지방선거에서 대표성 확보를 위한 조직화와 토양 마련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슬기 칼럼니스트의 지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