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레터 52. ‘낙태약 도입이 출생률 떨어뜨린다’는 착각

‘낙태죄 헌법불합치’ 후 6년 침묵 깨고, 이재명 대통령 약속 ‘임신중지약 도입’ 현실로

2025.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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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수술을 즐겁게 받는 여성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저 여성의 말을 듣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1974년 11월 26일, 임신중지 합법 법안 표결을 앞둔 프랑스 의회에서 보건부 장관 시몬 베유가 한 연설입니다. 반세기 전 얘기를 다시 꺼내는 까닭은 당시 프랑스 사회와 지금 한국이 놀랍도록 닮아서입니다. 사문화된 것이나 다를 바 없으나 ‘낙태죄’는 존재했습니다. 한 해에만 여성 약 30만 명이 불법 수술을 받았습니다. 매년 최소 300명이 사망했고, 불임이 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남성 의원들은 애인이나 지인을 위해 임신중지 시술 정보를 몰래 주고받으면서도 “(임신중지는) 나치들이 그랬듯 법으로 포장한 야만”이라는 폭언을 했습니다.

2025년 한국은 어떤가요. 안전하고 표준화된 임신중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나라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핵심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임신중지 약물조차 합법적으로 구할 수 없습니다. 임신중지를 했다가 ‘살인죄’로 기소된 여성들의 소식이 끊이질 않습니다.

미숙하고 위험한 불법 시술을 받다 죽거나 다치는 여성이 몇이나 되는지 우리는 모릅니다. 다만 식약처가 2022년 606건, 2023년 491건, 2024년 741건의 온라인 불법 유산유도제 판매를 적발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여성들이 ‘어둠의 경로’를 통해 방법을 찾다가 가짜 약이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드디어 국가가 움직입니다. 지난 9월 16일,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123대 국정과제’에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과 임신중지 약물 도입 추진이 포함됐습니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6년 만입니다.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건강보험도 적용하는 내용의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어느 때보다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고, 바로 시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안다”고 자신합니다. 원안대로만 통과된다면 임신중단 합법화를 끌어내 프랑스 여성의 삶을 바꾼 시몬 베유의 이름을 딴 법안처럼 ‘한국의 베유법(Loi Veil)’이라 부를 만합니다.

시작에 불과합니다. 전문가들은 임신중지 약물의 전국적 접근성 확보, 의료진 교육과 가이드라인 마련을 시급한 과제로 지목합니다. 피임에 대한 성별 책임 분담과 사회 인식 개선도 중요합니다. 이번 레터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짚어봅니다.

‘임신중지를 허용하면 출생률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있지요. 반세기 전 프랑스에서도 반복됐던 구도인데요. 참고로 프랑스의 출생률은 임신중지 합법화 이후에도 안정적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임신중지 합법화 여부보다 피임 접근성과 사회경제적 요인이 출생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습니다.

프랑스 의회는 여성들에게 임신중지는 마지막 안전망이자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임을 인정하기를 선택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합니까. 남인순 의원의 여성신문 인터뷰 중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기꺼이 임신중지를 선택하는 여성은 없다. 빠르고 안전하게 의료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부, 국정과제에 임신중지 약물 도입 명시

9월 16일 발표된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에 여성가족부 주관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 과제에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과 임신중지 약물 도입 추진이 포함됐습니다. 원민경 여가부 장관은 “성평등가족부 확대 개편을 계기로 새로운 정부의 국정과제를 국민의 눈높이에서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헌법 불합치 이후 안전 문제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안.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허가받은 약물을 사용 중이고, WHO도 임신 주차에 따라 권고하고 있다. 안전한 사용 방안을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해 검토하겠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8월 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부처 내부에서도 더 이상 이 사안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관계부처 간 협의를 보다 긴밀하게 진행할 계획.” (김상희 보건복지부 인구아동정책국장, 9월 2일 국회 간담회에서)

관련 법안 국회 통과 유력

남인순 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수술뿐 아니라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건강보험 급여도 적용하는 내용을 담은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 “입법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불합치 이후 입법공백은 여성인권 침해라며 양질의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고, 유엔여성차별철폐 협약 등 국제 인권 규범에서도 임신중지를 여성의 주요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2005년부터 임신중지 의약품을 필수의약품으로 등재했으며,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이 사용하고 있다.

최근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계획에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명시됐고,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허가 신청 심사가 이미 진행 중이어서 법만 통과되면 곧바로 시행할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는 상황으로 안다.” (남 의원, 9월 4일 여성신문 인터뷰)

‘무제한 임신중지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반박했습니다.

🗨️ “실제 임신중지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들을 보면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부담 등이 대다수다. 중요한 것은 임신을 더 유지할 의사가 없는 경우, 빠르고 안전하게 의료적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물론 임신중지 약물 도입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여성들의 목소리입니다. 의료진 교육과 가이드라인 마련, 피임에 대한 성별 책임 분담, 임신중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등 과제가 많습니다.

남성의 책임도 중요하다

최나현 부산대 여성연구소 강사는 8월 12일 여성신문 <여성논단> 칼럼에서 “여성의 선택권이 늘어날수록 남성들의 마음은 더 가벼워지는 게 아닐지” 우려했습니다. “남성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할 때 미프진은 비로소 혁명이 될 수 있다”며 남성의 인식 교정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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